1.『신학비평』은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비평'을 지향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비평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무릇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알짬(本質)을 드러내는 데 본뜻이 있는데, 신학마다 그 알짬을 들어내는 형태가 다양해서 언제나 논의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어느 신학이 보다 '참된 신학'인가를 가리는 일이 필요하다. 『신학비평』은 그것을 우선과제로 삼는다.
이것은『신학비평』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자체의 참됨과 그릇됨을 가리는 평가의 작업을 동반한다. 아무리 완벽한 사상이나 이론이라도 그 안에는 편견이나 오류나 모순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얼마든지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신학비평』은 단순히 전통적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거나 변증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알짬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뜻이 있는가를 해석하려 한다. 따라서 종래의 그리스도교 신학은 제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것은 얼마나 정당한지,『신학비평』은 '물음의 정신'으로 이것을 따져볼 것이다.
여기서 '물음의 정신'이란 회의와 부정과 비판의 정신을 일컫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궁극스러운 긍정(ultimate YES)을 위한 회의와 부정과 비판이다. 또한 '물음의 정신'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자기를 내던지는[내맡기는] 자기기투(自己企投)의 정신이다. 예수의 말을 빌리자면, “이 땅위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나라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를 일컫는다. 그리고 '물음의 정신'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삶과 역사의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정신이다.
2. 이 일을 위해 『신학비평』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있는 여러 가지 신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그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그 자체에 내장된 문제점 특히 '교리'로 정식화한 가르침의 문제점을 들추어내서 그 정당성 여부를 냉혹하게 평가하는 일이다.
참 신학'을 지향하는 일이다. 참 신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 곧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세계를 이루는 것을 구극의 목표로 삼는 '인간화신학'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있는 신학이나 교리를 평가하는 기준을 '인간화'에 두려고 한다. '인간화'가 곧 비판의 잣대이며,『신학비평』의 틀이다. 그러나 인간화의 거점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예수'의 삶과 그의 하느님나라 메시지와 하느님나라운동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역사의 예수야말로 신학비평의 전거(典據, paradigm)이다. 우리는 역사의 예수를 전거로 하여 그리스도교의 대안을 모색하는 일을, 신학비평의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가능한 한 인간화를 펼칠 수 있는 신학이론과 인간화의 시각에서 보는 설교나 신학 에세이를 싣고, 신학의 꽃이랄 수 있는 강단[설교]는 특히 중시한다. 그리고 인간화의 실현을 주제로 하는 글이라면, 그것이 서평이든 시이든 시론이든, 어떤 형태의 글이라도 가리지 않고 실으려 한다. 이미 발표된 우수한 논문을 골라 자상하게 소개하는 한편, 문제를 안고 있는 논문을 골라 진지하고 엄격하게 평가하는 일도 병행한다.
이제까지 말한 일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그럴듯한 신학비평의 작업을 이루어 내는 데 함께 연대하려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의 일이 아니다. '인간화'를 지향하는 사람은 누구든지『신학비평』의 벗이다. 따라서 『신학비평』은 '동인지'의 형태를 갖추고, 더 나아가 모두의 올바른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를 바란다.
3.『신학비평』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도전이며, 시도이며, 실험이다. 그리고 이 도전과 시도와 실험은 그치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바라고 힘쓸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힘쓰는 사람의 몫이 아닌가. 『신학비평』에 뜻을 같이 하는 진리의 벗의 참여를 기다린다.
(2001 여름, 창간호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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